“나는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평일도 129초소 총기난사의 진실 [전남 완도 방위병 총기난사, 동료 2명 숨지게 하고 자폭]
당시 MBC뉴스는 이렇게 보도되었다.
앵커: 또 다른 사건입니다. 어젯밤 8시10분쯤 전라남도 완도군 동백리 평일도 새머리 해안초소에서 방위병 21살 유명우 상병이 총기를 난사해서 분 초장 박정렬 하사와 동료방위병 김병희 상병을 숨지게 한 뒤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 일병은 어젯밤 술을 마시고 초소에 들어온 것을 분초장인 박하사가 꾸짖자 갖고 있던 M 16소총으로 이들을 쏘아 숨지게 한 뒤에 5백 미터쯤 떨어진 해안으로 달아나 군 병력과 대피하다가 갖고 있던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했습니다.
남해안 섬 중 오랜 평화가 이어진 곳이란 뜻의 완도군 평일도. 평일도라는 이름은 밖으로부터 침략을 한번도 받적이 없는 ‘평화로운 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죽마고우였던 세 사람은 이 섬에서 함께 나고 자라 함께 군에 입대 했다. 제대를 앞둔 어느 겨울밤, 15발의 총성과 2번의 폭발음이 차가운 해안가의 적막을 깨웠다. 세 친구 중 한 명인 유정우 상병이 분대장과 친구를 총으로 살해한 뒤 다른 한 친구와 무장 탈영한 것. 곧이어 자수를 하겠다며 홀로 나타난 유광수(가명) 상병. 그는 친구 정우가 자신마저 죽이려했다며 총알과 수류탄 파편을 극적으로 피해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군부대하고 광수(가명)하고 정우한테 누명을 씌우려고 의논이 있었어요
-당시 부대원과 유가족 통화 中-
동료 군인 두 명을 총으로 살해하고 자신은 수류탄으로 자폭했다고 알려진 故 유정우 상병. 그의 가족들은 죄인이라는 낙인 때문에 동생의 죽음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 동료 부대원들의 잇따른 증언에 정우 씨의 가족들은 중대한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129초소의 총성과 세 친구에게 생긴 비극, 1989년 12월, 그곳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헌병대의 허술한 조사인가, 젊은 병사의 조작된 죽음인가
총알 같은 것만 박혀있어. 여러 방 맞았어요 자동으로 갈겨버린 것 같아요
-故 유정우 상병의 시신을 염습한 부대원 인터뷰 中-
故유정우 상병의 유족은 작년에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을 넣으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사망한 정우 씨를 염습했던 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시신의 상처가 총구로 보였다고 진술했던 것. 또한 군의관의 검안보고서에는 수류탄 파편상과 동시에 총상이 추정된다는 기록이 기재되어 있었다. 어찌된 영문일까? 당시 헌병대 수사는 유일한 목격자이자 생존자였던 유광수(가명) 상병의 진술에 따라 수류탄 자폭사한 故유정우 상병의 단독범행으로 종결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30년간의 침묵. 과거의 헌병대 수사 기록은 많은 것들이 빠져 있었다. 현재 총상과 파편상을 확인해볼 수 있는 건 흐릿해진 사진 몇 장 뿐, 이에 유족들은 고심 끝에 유해를 발굴하기로 결정했는데.
# 15발의 총성과 2번의 폭발, 망자와의 진실게임
두개골을 (본 순간에) 아, 총 맞았구나 -국방부 전 총기폭발물 전문가-
총기에 의해서는 가능하지 않아요. 방향이 폭발력에 따른 파편창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법의학 전문가 이호 교수-
30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 故 유정우 상병의 백골. 하지만 두개골 유해를 두고 무기전문가와 법의학자가 상반된 의견을 보였다. 수류탄 파편상과 총상으로 의견이 엇갈린 것. 이에 제작진은 총상과 파편상, 자살과 타살의 가능성을 두고 여러 전문가들의 분석을 들어보기로 했다. 기억의 간격만큼 먼 진실, 망자의 유해는 그날의 진실을 말해줄 수 있을까?
또한 내무반에서의 총기난사는 故 유정우 상병의 단독범행이라는 당시 수사에 따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헌병대 보고서를 토대로 최초로 AR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총격 상황을 재현해보기로 했다. 시간을 거스른 129초소의 내무반, 그날 밤 총을 쥔 이는 누구였을까..
다시보기
그것이 알고싶다 1229회 "나는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평일도 129초소 총기난사의 진실 다시보기는 아래의 링크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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