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책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에서 말한다 역경은 실패가 아니고, 비판은 패배가 아니다라고. 절망의 시대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이 책을 통해 가장 중요하게 배운 점은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안에서 증여경제론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이 저자들은 서술하고 있다. 단지 이 개념이 너무 낡거나 보수적인 소리 아닐까 하는 느낌은 분명히 준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만연한 지금 사회 속에서 니트족 즉 정규교육 이후 일도 안하고 진학도 안하는 세대에게 하는 말에서 사실 구체적인 대안은 아닐까 싶었다.
언젠가 웹에 기사로 제목을 보게된 ‘'니트족'이라 부르지마라, 우리는 '포기'로 저항한다” 라는 삼포족의 항변에 대한 일침이랄까? 그런 모습이 약간은 거부반응이 들었지만, 그 거부반응은 분명 몸에 좋았던 지라, 입에 쓴 약이리라 생각한다
자기가 획득한 사회적 자원을 자기 곳간에 쌓아두는게 아니라 다음 세대가 쓰도록 원활하게 흘려보내는 라인을 만드는 것... 이것이 본래적인 '파이프라인'이 아닌가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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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비교적 단순하거든요. 밥을 먹이거나 옷을 입히거나 잠잘 곳을 마련해주는 것. 결국 그런 일 뿐이에요. 비유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말이에요.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여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주고, 잠잘 곳이 없는 사람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 그것만 할 수 있으면 충분하고도 남아요.”
증여는 과연 소중한 행위인가?
증여는 객관적인 조건이 아니라 주관적인 결단의 문제예요. 다른 사람이 자기한테 무엇을 해주는가보다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해줄까를 생각하는 사람만이 증여의 사이클에 참여할 수 있어요. 그것은 그 사람이 부자든 가난뱅이든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전혀 상관이 없어요.
증여한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행위입니다. ..... 왜냐하면 자기가 꾸준히 노력해서 어느정도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 조금씩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자산을 모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애당초 그것은 자기 힘으로 이룬 게 아니거든요.
어릴 적에는 부모 손을 빌렸고, 친구, 상사, 동료, 스승 등 여러 사람의 뒷받침과 도움이 있었으니까 오늘날의 자기가 있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은혜를 은혜로 갚지 않으면 안되죠. .....자신의 성공은 자기 혼자서 이루어내지 않았다는, 그래서 지금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은 자기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위탁받은 것'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기본 규칙은 단 하나,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뿐이에요. 젊은이뿐 아니라 어린이, 임산부, 병자, 노인들에게도…. 지금 당장 기력이 있고 어느 정도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 몫까지 일을 해서 지원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사회모델의 기본이 아닐까 해요.”
“우리는 ‘어떻게 하면 공동체를 유지할까’라는 경험지의 소중함을 잊어버렸습니다. 돈만 있으면 필요한 것은 전부 시장에서 상품의 형태로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뼛속 깊이 돈, 돈,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그런 단순한 삶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통렬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선 ‘돈’이 없으니까요. 둘째는 ‘정말로 필요한 것,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나와 오카다 씨가 주목한 ‘위기’는 상당히 심각합니다. 물론 독자 여러분은 이 대담을 웃으면서 읽으셔도 상관없지만, 잠시 동안만이라도 책에서 손을 떼고 ‘내가 살아남기 위한 공동체’는 어떤 것일까 스스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회적 증여행위와 공동체의 필요성
이렇게 사회의 증여행위와 공동체의 필요성에 대해서 두 저자의 대담이 이어진다.
그 후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저도 강연회에서 '어떻게 하면 결단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결단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패배랍니다. ' 라고 대답했어요.
맞아요! 딱 그래요! 올바른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끝장이라는 상황에 내몰린 사람에게는 이미 패배가 기다리고 있어요.
몹쓸 것과 더 몹쓸 것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언제나 올바른 길을 가는 사람은 분기점을 경험하지 않거든요. ....올바른 결단은 사실 그런거예요. '말할 필요 없이 이쪽을 선택해야 해" 라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고, 그럴 때 '결단' 이라는 의식은 개입하지 않아요.
막다른 골목에 몰려 ‘궁극의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은 거기에 도달하기 전에 다양한 분기점에서 하나같이 계속 잘못된 선택을 해온 사람이거든요.
라는 문구였다.
이것과 생각해보면 그 앞에 전제되었던 아래와 같은 문장이 있었는데
"선생이란 굳이 대답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돼요. '최종적인 대답을 주지 않는' 것이 선생이 할 일이거든요.
.....결국 문제는 어떻게 해야 그 아이가 스스로 배우는 시스템을 발견해서 끝없는 성숙의 과정 안에 자신을 풀어놓느냐...이것뿐이니까요."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배우는 시스템 안에서 끝없는 성숙의 과정 안에 내 스스로를 풀어놓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당장 내놔!' 라고 한다든지 '고생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는데 취직도 못하다니 말도 안돼!' 라고 말하는 사람은 결국 '노력한 사람은 언젠가 꼭 보상을 받는다' 는 것을 진심으로 믿지 않는다고 하겠어요
이 말이 가장 아픈 말이었다. 시험은 아무리 노력했어도 점수가 좋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긴 지식은 결과와 상관없이, 네 몸에 문신처럼 남아 너를 키우고 지키는 힘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즉 노력의 대가는 마음의 성장이었지, 그 대가인 결과는 아니었다라는 말이 아닌가 싶다. 운 까지 최대한 가까이 간다는 것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매일처럼 운동하여 단련한 근육이 체력이 되어 힘든 시간을 지탱해 주듯이, 노력의 대가는 성장이고 결과를 향한 도약의 뜀틀이자 자양분인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나의 꿈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매달려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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