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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정답없는 수수께끼같은 농담)

theJungs 2020.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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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가 낳은 모든 것들은 당신을 시험한다.

당신이 그것을 얼마나 원하는지를. 거부를 당한다 해도 일을 것인가를.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태평양 한가운데, 조난당한 한 남자가 튜브를 붙잡고 표류하고 있다. 그때 저 멀리서 똑같이 튜브를 붙잡은 한 여자가 헤엄쳐온다. 그들은 나란히 바다 위에 떠서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잡담을 나눈다.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눈 후 여자는 어딘가 있을지 모를 섬을 찾아 헤엄쳐가고, 남자는 그 자리에 남아 맥주를 마신다. 여자는 이틀 낮, 이틀 밤을 헤엄쳐 어딘가의 섬에 도착하고, 남자는 그 자리에 남아 술에 취한 채 구조대에 의해 구조된다. 몇 년 후 이 둘은 어느 고지대에 있는 작은 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데, 여자는 굉장히 혼란스러워한다. 자신은 팔이 빠져라 열심히 헤엄쳐서 살았는데,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 역시 살아있다니. 여자는 헤엄치며남자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노라 고백한다. 하지만 남자는 살았다. 열심히 헤엄친 그녀와 똑같이…….

열심히 노력했다고 반드시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열심히 안 했다고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그렇다. 우리가 믿었던 것과는 다르게 인생은 이처럼 아이러니하다.

결과적으로 여자도 남자도 똑같이 운이 좋았는데 여자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자신이 얻은 것은 노력으로 받은 보상이라 생각하고 남자가 얻은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한다.우리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의 믿음, 노력이 우리를 자주 배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라 열심히 노력하는데 고작 이 정도고, 누구는 아무런 노력을 안 하고도 많은 걸 가져서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고, 노력한 만큼 보상이 없을 수도, 노력한 것에 비해 큰 성과가 있을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괴로움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

내가이만큼노력했으니 반드시이만큼의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괴로움의 시작이다

노력은 항상 우리를 배신하기 때문에 노력하면 할수록 자꾸 억울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여자처럼 말이다

하루키는 억울해하는 우리의 마음을 이상한 방식으로 위로한다

원래 인생은 공평하지 않아. 노력으로 다 된다는 말도 거짓말이지. 알겠어

네 노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야. 여기엔 어떠한 해답도 없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국내도서
저자 : 하완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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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구절

내가 욕망하며 좇은 것들은 모두 남들이 가리켰던 것이다.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게 부끄럽다. 나는 열심히 쫓아가다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엎어진 사람이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참에 나만의 길을 찾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제부터는 마이 웨이다. 그나저나 앞으로도 나잇값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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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를 갈망했던 이유는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꿔줄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어른들은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인생이 성공으로 끝나는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다들 미대 중에선 홍대가 최고라며 입을 모았다. 홍대만 나오면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스카우트한다는 소문도 들렸다. 바로 저기다. 저기만 들어가면 내 구질구질한 인생도 한 방에 바뀌겠지. 아무도 날 무시하지 못할 거야. 지금 내 상황에선 저곳만이 유일한 희망이야

조금만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길들이 있는데, 그때는 그게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하나, 이 길만이 유일한 길이라 믿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길은 절대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그 길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가보면 그 길이 자신이 원하던 길이 아닌 경우도 많다

 

나는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싫어한다. 목숨 빼곤 다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쉽게 포기하며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하는 목표가 있으면 노력도 하고,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 그렇게 두세 번 도전했는데도 안 되면 과감히 포기하는 게 맞다. 나처럼 4년 혹은 그 이상 매달리는 것은 집착이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처럼 잔혹한 말은 없다. 그 목표를 절대 포기할 수 없어서 자신의 목숨을 끊다니 이런 비극이 어디 있단말인가

 

포기는 비굴한 실패라고 배웠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현명한 삶을 살기 위해선 포기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는인내노력같은 기술을 이미 수도 없이 익히며 살았지만, 포기하는 기술은 배우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포기하지 말라고 배웠다. 그래서 포기하지 못해 더 큰 걸 잃기도 한다.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 노력과 시간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더라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 실패했음에도 새로운 것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현명한 포기는 끝까지 버티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체념이나 힘들면 그냥 포기해버리는 의지박약과는 다르다. 적절한 시기에 아직 더 가볼 수 있음에도 용기를 내어 그만두는 것이다. ? 그렇게 하는 것이 이익이니까. 인생에도 손절매가 필요하다.

 

장기 불황으로 체득한 무력감,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꿈을 이루기 힘든 세상을 보고 자란 이들은 꿈을 꾸지 않게 된다. 희망이 없기 때문에 노력도 하지 않는다. 누구를 원망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고 오히려 괴롭기만 하다는 걸 깨달은 이들은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는 방법을 발명했다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생각은 참으로 오만한 생각이었다. 내가 아무리 이쪽으로 가려고 해도 큰 흐름이 나를 저쪽으로 데리고 가는 일이 더 많다. ‘내가 다른 선택을 했어도 결국 지금과 비슷한 모습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계단의 시작과 끝을 다 보려고 하지 마라. 그냥 발을 내딛어라._마틴 루터 킹

 

심각할 필요 없다. 매번 진지할 필요도 없다. 답을 찾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농담을 못 받아치고 심각하게 대답하는 것처럼 센스 없게 살고 싶지 않다.내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현실은 궁상맞지만 과거처럼 비관적으로 반응하지 않겠다. 이건이 아니라리액션이 중요한 시험이니까. 내 리액션은 괜찮은 걸까?

 

가끔은 인생에 묻고 싶어진다. 이렇게 끝도 없이 문제들을 던져주냐고. 풀어도 풀어도 끝도 없고, 답도 없다

이쯤 되니 인생이 하나의 농담처럼 느껴진다. 정답 없는 수수께끼 같은 농담 말이다

농담을 걸어온다면 농담으로 받아쳐주자

 

우리의 삶은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와 같다. 파도 위에서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잘 잡으려면 꼿꼿해선 안 된다. 유연해야 한다. 힘을 빼고 이리저리 휘둘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파도에 맞춰 무게중심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쉴 새 없이 옮겨야 넘어지지 않는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면 마치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보면 열심히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내 삶이 매우 불안해 보일지라도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이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타는 것이니까.

 

사람들은 남들과 똑같이 살기 싫다고 말하면서도 왜 똑같이 맞추려고 애를 쓰고, 뒤처지면 불안해하는 걸까? 그리고 설령 뒤처지고, 느리다고 한들 그게 큰일일까? 사람은 각자의 속도가 있다. 자신의 속도를 잃어버리고 남들과 맞추려다 보면 괴로워진다. 남들과 다르게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남들과 전혀 다른 삶이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한다고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걸 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어차피 결과를 알 수 없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낫다. 남들의 인정에 목매지 말고 자기 세계에 집중하다 보면 그 세계가 더 단단해져 결국은 사람들도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끝내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하고 싶은 걸 실컷 했으니 남들의 취향에 맞추려고 노력만 하다 끝내 인정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모두를 맞추려다간 아무도 못 맞출 수 있다

 

이야기를 잃어버리고 결과만으로 어떤 사람을 평가 내리는 습관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내 삶을 평가한다. 내 삶을 실패로 만들고, 내가 했던 연애를 시간 낭비로 만들고 남들과의 단순한 비교로 내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에겐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많은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어떤 길을 고집한다는 것은 나머지 길들을 포기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마치 꿈을 찾아라! 희망을 가지고 열정을 품고 불살라라 하는 것이 맞는 때도 있겠지만

이제부터 진짜 사랑을 찾을 거야.’라며 찾아 나선다고 사랑이 찾아지는 게 아니듯, 진짜 하고 싶은 일도 찾는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었다 라는 저자의 말이 더 와닿았다. 그래서인지 현재의 삶에 빠져보는게 어떨까 하는 아래 글을 결미로 선택했다.

인간은 뇌의 95퍼센트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쓴다고 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우리는 현재를 살지만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다

고작 5퍼센트의 뇌로 현재를 살고 있으니 금방 방전될 수밖에 없다

방전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하는 아니라하는 아닐까

걱정도 하고, 노력도 하고, 후회도 하면 좋겠다.

자신의 마음을 따르면 적어도 남을 탓할 일은 없다

성공해도 실패해도 책임이다. 그러면 인생이 억울하다. 인생이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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